블로그 이미지
qtman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Rss feed Tistory
구약 QT/창세기 2022. 10. 17. 00:01

<창세기 12:1> 비전을 버려라

 

 성경말씀 : 창세기 12:1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말씀묵상 

하란에서 그의 아비 데라와 함께 머무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떠날 것을 명령하십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그의 아비와 함께 떠나려고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가 죽었으므로(행7:4) 미련을 갖지 말고 출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갈대아 우르에서의 명령에(행7:3) 하나 더 붙여서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에서 명령 내리실 때와 같이(행7:3) 오늘 본문에서도 네게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으로 떠나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11장에서 목적지를 가나안으로 기록한 것은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기록된 것이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하고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11:8)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명령인줄 아십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 자체가 결단을 요구하는 힘든 것인데 목적지도 알려 주시지 않고 떠나라니 도대체 첫발을 어느 방향으로 내딛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목적지를 세우면 하나님보다도 그 목적지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루하루 시간시간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 오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청사진을 주시게 되면 우리는 그 청사진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진 자체를 주목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사진을 보여주시지 않으십니다. 

비전을 제시해 주시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요즘 교회에서 비전이란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비전이 없으면 마치 신앙생활에 있어 낙오된 자와 같이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비전이란 것은 분명 어떤 일을 추진해 나가는데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영역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doing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란 doing이 아니라 being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에 신앙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날마다 시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들 비전을 말할때 꿈의 사람 요셉을 예로 듭니다.

요셉이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잡았기에 고난을 극복하여 총리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이룰때까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전진하자는 것입이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일까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 그의 형들이 곡식를 사러 와서는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그때서야 요셉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생각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창42:9) 원문상에 나타난 이 구절의 뉘앙스는 요셉이 지금까지 꿈을 잊고 있다가 형들이 절하는 것을 보고서 그때서야 어릴때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요셉이 역경 때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 는 성경의 표현이 잘 증거합니다.

성경은 요셉이 역경을 겪을 때마다 꿈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 보며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것은 요셉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비전을 요구하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깔려 있습니다.

무엇인가 보여야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사진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어느 길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오리무중과 같은 상황에서 무조건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앞길을 인도하시겠답니다.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측불허한 인생길을 그저 하나님만 절대 신뢰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전입니다.

비전은 청년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의 직전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큰 비전을 갖을 수 있는 때입니다.

 

 기     도 

우리의 앞 길을 알 수 전혀 알 수 없는 안개 속 같은 인생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만을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허락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2:2~3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