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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13. 00:00

<창세기 10:21~32> 셈의 족보에서 읽는 구원경륜

 

 성경말씀 : 창세기 10:21~32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말씀묵상 

셈의 족보는 먼저 말씀드렸듯이 중요한 것을 나중에 기록하는 히브리적 관습에 따라 야벳과 함의 족보가 모두 기록되 후 기록되었습니다.

그것도 욕단의 자녀들인 6대까지 기록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11장 바벨탑 사건을 얘기한 후 다시 셈의 족보가 기록되는데 이번엔 아브람까지 그 계보가 이어 갑니다.

이렇게 셈의 족보를 10장과 11장에 나누어 기록한 것은 셈의 족보가 야벳과 함의 족보에 속하는 일반역사에 범주에 들어감을 말한다.

동시에 아브람함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구속사의 흐름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즉 구속사는 일반역사와 동떨어져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에 들어가서 은둔하며 살지 않습니다. 세상에 들어가서 그들과 섞여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성경은 셈의 족보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야벳과 함의 족보는 셈의 족보를 기록하기 위한 들러리로서 기록되었습니다.

함의 후손들이 세우는 바베론이나 야벳의 후손들이 세우는 페르시아 제국에 성경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아브람이라는 평범한 사람과 그 후손들에게 초점이 모아집니다. 

이것은 일반역사가 대단해 보일지라도 결국은 구속사의 진행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까닭은 택자 구원의 완성을 위한 구속사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구속사의 배경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배경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구속사의 어느 자리에 위치한 배경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경륜 안에서 이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영적통찰력을 지녀야 할것입니다.

또한 이방제국을 이스라엘의 훈련도구로 사용하셨듯이 불신자들이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결국은 저들은 신자의 영적훈련을 위한 들러리입니다.

불신자들의 삶과 우리의 주위를 둘러싼 환경들은 신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속으로 들어가 살지 못하게 하시고 세상의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으신 것은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훈련을 위한 세팅장입니다.

세팅장은 아무리 화려해도 목적이 이루어지면 부수어지는 가건물일뿐입니다.

그것을 보고 부러워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셈에게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도다” 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셈의 계보에서 여자의 후손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족보임에도 불구하고 셈에게서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 란 약속 이외에 다른 복에 대해서는 일절 말씀이 없습니다.

셈의 계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야벳과 함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지명이나 민족명으로 사용된 이름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셈 계열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복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셈의 후손들에게는  메시아가 오시는 사건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메시아 계보를 이어가는 혈통이 된 것 그 하나로만 충분히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식이 그 마음에 충만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복이 주어지지 않아도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한 분 때문에 행복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더 달라고 할 복이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그 이외에 주어지는 모든 것들은 복이 아니라 은사일 뿐입니다.

 

이제 21절을 보십시요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벨은 셈의 4대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상들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밸이 셈의 족보가운데 갖는 중요한 위치 때문입니다.

에벨은 ‘건너다’ 란 뜻을 가지고 있는 ‘아바르’에서 유래된 말로 히브리의 어원과 뜻이 동일합니다.

아브람이 유프라데스 강을 건너서 온 사람이란 뜻에서 ‘건너다’란 뜻의 히브리인으로 불리웠고 그의 후손들에게도 히브리인이란 명칭이 따라 다니게 된 것입니다.

에벨의 이름이 ‘건너다’ 란 뜻을 지닌 것으로 보아 그도 죄악의 도성 바벨을 떠나 유프라데스 강을 건넌 것으로 추정됩니다.

셈의 족보를 에벨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11장에서의 족보 마지막을 히브리인 아브람의 이름으로 마무리한 것은 셈의 후손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건넜다’ 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을 건너온데 있습니다.

탐욕의 마음, 악한 생각, 잘못된 습관, 불의한 행동에서 건너왔습니다. 

이제 강 건너편의 세상과는 완전히 결별한 사람들입니다.

저곳에 미련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에벨이요 히브리인입니다.

 

 기     도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읽을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주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세상을 건너온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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