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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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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Day란 2018. 8. 31. 00:00

<아가 4:12~16> 들어가며 : 큐티의 본질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주님을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의 여정을 같이 할 유응준 목사입니다.

아무쪼록  이 공간이 우리 주님과의 더욱 깊은 교제에로의 통로가 되어 주님과 늘 동행하는 복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실 큐티를 통해 한국교회는 많은 영적 유익을 누려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큐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앙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한 흐름이 지속 발전되어서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더욱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만 큐티가 주는 풍성한 유익을 좀더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큐티에 대한 느낌중 조금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가되어 몇가지 적어 봅니다.


그 첫째는 정형화된 틀속에서 우리가 큐티를 대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큐티는 반드시 나의 삶에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본문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억지 끼워 맞추기식 적용을 하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식의 큐티는 신앙의 주관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큐티가 익숙해지면  성경말씀을 선택 할 때도 쉽게 적용거리를 찾을 수 있는 본문을 선택하게 되고 어렵거나 딱딱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본문은 피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의 편식은 결국 진리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함께 건강치 못한 영적상태를 불러오게 됩니다.

물론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화석화 된 정통주의, 냉냉한 교리주의에 반발하여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속에서 태동된 것이 큐티라는 것을 감안할 때  삶의 적용이 큐티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적용이 큐티의 본질은 아닙니다.

경건주의는 형식적이고 관념적이며 초월적인 신앙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내재적인 신앙을 추구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 안에만 갇혀있는 추상적인 하나님, 하늘 저편에 좌정하셔서 나의 삶과는 동떨어져 계신 초월의 하나님을 나의 심령가운데 나의 삶 가운데 동행하시며 실존해 계시는 주님으로 내재화 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초월해 게신 하나님을 내재화시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큐티의 본질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남녀가 데이트 하며 연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녀가 교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서로를 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큐티의 첫 단계는 주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성경말씀을 통해 그분의 성품, 사역, 속성, 마음,의지,등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도 윤리적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주시고자 함이 아니요 가장 먼저 그분이 하신 일과 그것을 통해 그분이 어떤분이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 알아감을 통하여 서로의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러면 서로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거죠 그러면 눈빛만 바라보아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교제가 깊어질수록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될수록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삶의 적용이 이루어지겠죠.


그러므로 어떤 본문에서, 나의 일상생활로 이어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눈에 띄지 않아 구체적인 적용을 못했다 해도 거기에  연연해 하지 마시고 그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과 섭리와 그분의 속성을 생각하며 그분 자체를 즐거워 하십시오.  그럴때에 우리의 큐티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둘째는 위의 내용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말씀을 대할때 숲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몇 그루 나무만 본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통전적인 시각으로 말씀을 보지 못하고 한 단어 한 구절등 지엽적인 시각으로 말씀을 대하게 되면 진리에 대한 매우 편향적이고 왜곡된 인식을 지닐 수 있습니다.

적용에 있어서도 성령의 뜻이 아닌 아전인수격의 적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편식은 결국 건강치 못한 영적상태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큐티 본문을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가려운 부분을 즉시 긁어줄 수 있는 말씀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딱딱하더라도  창세기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에까지 유유히 흐르는 구속사의 강줄기 안에서 우리의 삶이 조명되어지고 그 줄기를 따라 가는 가운데 나타날 주님의 임재와 깊은 교제의 경험들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경말씀 : 아가 4:12~16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말씀묵상

창세기부터 시작이긴 한데, 큐티의 본질을 묵상함으로 첫걸음을 내딛고 싶어 아가서 4;12-16을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유할 때 곧잘 부모와 자식관계, 또는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통헤 표현하는 내용은 그 사랑의 종류가 하나님편에서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며 공개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신랑신부 관계를 통해 표현하는 내용은 그 사랑의 종류가  독점성과 배타성을 전제로한 쌍방간에만 주고 받는 은밀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그러한 사랑의 특성을 묘사함으로써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잘 설명한 성경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라는 여인의 연애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강렬하고 애틋한지를 보여줍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4:12-16은 사랑하는 두 남녀만이 기쁨을 누리는 은밀한 동산  밀애의 장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잠근 동산" 이라는 표현은 동산으로 들어가는 울타리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는 말은 그 안에 위치한 우물은 아무에게나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주인에게만 발견될 수 있는 비밀스런 장소임을 나타냅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의 묘사는  주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가 얼마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가르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에 있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이 동산(우리의 마음일 수도 있고 큐티하는 그 시간일 수도 있고)에 들어오도록 빗장문을 아예 열어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고 받은 자만이 알고 누리는 그 비밀의 기쁨을 맛보며 살지  못하고 세상의 좋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주어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그런한 기쁨을 추구하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농부의 비유를 통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리 안에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치루어야 할 댓가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신은 그 비밀스런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습니까?

 

우리의 삶을 거창히게 말하기 전에 작게는 큐티 시간만이라도 주님과 은밀한 교제를 나누는 잠근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아집, 신념, 세상의 정욕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내 마음에 모신 잠근동산에서, 사랑하는 그분과 밀애를 즐기고  주고 받은 자만이 아는 그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     도

오늘부터 시작될 QT시간이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교제의 시간이 될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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