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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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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12. 00:00

<출애굽기 3:3~4> 고독함을 통해 얻는 영적감각

 

 성경말씀 : 출애굽기 3:3~4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묵상

우리는 모세의 소명 기사를 대하면서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신비한 방법으로 나타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삶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시고 계시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붙는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셨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3절을 보십시요.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여기서 ‘돌이켜 가서’라고 표현된 부분의 원문을 직역하면 “이제 내가 정녕코 돌이켜 볼것이다” 입니다.

즉 그 광경을 보기 위한 모세의 강한 의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모세가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다가 주의를 기울여 자신이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그것을 보려고 가까이 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냥 보고 지나쳐서 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 가까이 갔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는 떨기나무들은 건조한 날씨때문에 서로가 마찰하여 불이 잘 붙는다고 합니다.

즉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것은 광야에서는 일상적으로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 일이 주의를 기울여 보아야만 할 특별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수 십년을 광야에서 양을 몰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광경이기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좀 오래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날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비범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


만일에 모세가 그 광경을 광야에서 종종 있는 현상으로 넘기고 그냥 지나쳤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바로 앞에 있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시지 않고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영적 민감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동일하게 역사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주위의 사람들, 말씀. 등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아!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라고 확연히 알 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해져 있지 못하면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우리 곁에 다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왜 나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지 않느냐며 우리는 하소연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을 만나는데 있어 영적 민감함이나 갈급함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그 경험이 하나의 체험이 아닌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영적 민감함이나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무의미 합니다. 

그냥  인생중에 신비한 체험 하나쯤 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갈급한 상태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만남이 의미가 있는, 자신을 변하시키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려고 하시는 것은 신비하고 특별한 체험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명자로 세움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4절에서 모세의 동작을 ‘돌이키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단어가 보통 사용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는 ‘회개’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그 의미에 해당하는 단어인 ‘돌이키다’를 사용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회개란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지금 모세의 동작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돌이키다’ 단어는 이렇게 중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에 주의 깊은 관심을 갖는 영적 민감함과 또한 지금까지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던 길에서 돌이켜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붙붙어 있는 떨기나무를 무심히 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는 모세의 태도와 행동은 이제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되었음를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은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적막하고 외로우며 고독한 환경이 때로 필요합니다.

아마 모세가 다른 양치기들과 즐겁게 떠들며 얘기하는 번잡한 환경가운데 있었으면 붙붙는 떨기나무를 무심히 보고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모세로 하여금 떨기나무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준 것은 그의 고독한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광야와 같은 고독하고 황량한 환경을 만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     도 

평범한 일상에서 주님을 볼 수 있는 눈과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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