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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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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12. 16. 00:00

<출애굽기 32:7~14> 인간중심성의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성의 신앙으로

 

 성경말씀 : 출애굽기 32:7~14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말씀묵상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네 백성’이라고 말씀하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우상숭배는 너무나 큰 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가 큰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치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다시 돌이키기 위한 목적에서의 징계나 벌이 아니라 아예 그들을 언약백성에서 끊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약백성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이 잘못하고 실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까지 이끌고 가신다고 하는 견인교리의 모호함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전혀 그래 보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실수와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언약백성을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까지 인도하시는 것은 분명한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이 이런 태도를 가지셨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아직 언약백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언약백성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나오는 태도와 행위는 언약백성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사건은 실수나 연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문제요 근본적인 방향성의 문제였습니다.

즉 금송아지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드러난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한 것이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종교성에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백성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하나님께 향한 인격적 사랑과 경외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네 백성, 이 백성이라고 호칭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되었던 자리에서 탈출하여 이곳까지 오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수많은 능력과 은혜를 경험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받은 은혜가 결국은 모두가 표면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큽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능력과 많은 은혜를 체험했을지라도 그 자체가 거듭남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기독교 신앙도 얼마든지 인간의 종교성에 의존하여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히브리서 6:4-6)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성에 기인한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조차도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내가 주인이고 내가 왕이 되어 신앙생활을 영위합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 그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의 왕이요 주인이라는 의식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함 때문에 넘어지는 실수와 잘못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잘못은 징계는 하되 얼마든지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이 목표로 한 지점까지 반드시 이끌고 가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시키는 대신 모세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민족으로 구속사를 이어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민족을 통한 구속사의 진행도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그대로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산 아래에서 범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칭할 때 네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 호칭에 담긴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세 너도 산 아래서 범죄하고 있는 저 백성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네가 백성들의 죄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너도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존재론적으로는 같은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가 그들과 대동소이한 인생이지만 너는 나와 언약 관계에 들어와 있는 자이기에 너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구속사를 이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은 인간의 어떠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멸시키지만 동일한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계속 진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모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절대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민족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데 얼마나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기회입니까?

더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모세의 속을 썩였습니까?

그럼에도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간청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열방들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소식을 알고 있는데 지금 이스라엘을 진멸시키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었던 하나님의 이름이 조소당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의 행복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지금 모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온통 하나님의 영광뿐입니다. 오죽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될지라도 이스라엘을 용서해주실 것을 간청했을까요?

이것은 그가 단순히 동족을 사랑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모세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모세는 자신이 지옥을 간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

바로 이러한 신앙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신앙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표면적으로만 읽게 되면 구원을 인간의 관점에서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도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얘기하면서도 온통 인간의 행복과 연결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구원을 얘기하면서도 인간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자아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천국가고 이 땅에서도 행복해지는 것은 그 부산물일 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면 하나님이 누구며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거듭나야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신다 할지라도 그분은 마땅히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신앙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이곳에서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모세와 같은 이러한 신앙이 있습니까?

만일에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독재자요 폭군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그 분을 절대 경배하고 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의 입문 단계에서는 나에게 베풀어 주시는, 나에게 유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이란 것입니다.

만약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러한 의식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실 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인간중심성의 신앙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신앙은 반드시 재고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신앙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모세의 신앙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바른 신앙의 자세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우리의 신앙관이 인간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성으로 옮겨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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