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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6. 00:00

<출애굽기 2:1~10>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지 않는 요게벳의 신앙

 

 성경말씀 : 출애굽기 2:1~10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말씀묵상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기 위한 바로의 두 번째 정책도 싶패를 하자 바로는 세 번째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민족가운데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이것은 성도를 향한 사단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한 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바로의 계략 앞에서 이스라엘은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의 한 가정에서 태아난 아이를 그 부모가 몰래 키웁니다.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이었습니다. (출 6:20, 민20:59)

군사들이 돌아다니며 아이가 우는 집을 모두 조사할 텐데 아이를 숨겨 키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그 아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바로 모세입니다.

2절을 보면 요게벳이 그 아이의 잘 생긴 것을 보고 몰래 키웠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잘 생긴’ 이라고 번역된 ‘토브’ 는 창세기에서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외모상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아름다움’ 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갓 태어난 아이의 외모에서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갓 태어난 아기들은 외모상으로는 오히려 징그러워 보입니다.


성경은 모세의 출생배경을 말할 때 레위 지파를 언급합니다.

비록 레위는 야곱의 축복에서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받았지만 이 후의 그 후손들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참으로 경건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제사장 지파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태어나는 배경을 레위 지파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늘 생각하는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날 때 그 부모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질 것임을 내다 본 것입니다.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명을 내 걸고 그 아이를 키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후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져 더 이상 집안에 아이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역청을 칠한 갈대상자 안에 넣어 나일강에 떠내 보냅니다.

요게벳은 모세를 나일 강에 그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지혜입니다.

그녀는 모세가 태어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 보았기에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면서도 그 아이를 하나님이 살리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갈대 상자를 모세의 누이를 통해 따라가도록 합니다.

결국 갈대상자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공주의 눈에 뜨게 되어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면멸히 살피면 이 모든 결과가 요게벳의 주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그 넓은 나일 강에서 어떻게 공주가 목욕하고 있는 곳으로 그 갈대상자가 떠내려 갔을까요 ? 

물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공주가 평상시 목욕하는 장소가 어딘지 알아보고 공주가 자주 목욕하는 곳 근처 상류에서 그 장소를 향하여  갈대상자가 흘러가게끔 떠내려 보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권세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떠내려 가는 갈대상자 안의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게벳이 미리암으로 하여금 갈대상자를 따라가게 한 것도 자신의 생각대로 갈대상자가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는 곳으로 잘 흘러가고 있나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로의 공주가 그 아이를 키우려고 하자 미리암을 보내 자신이 유모로서 모세를 키울 수 있도록 지혜를 발한 것입니다.


그녀는 약속을 바라보녀 하나님이 그 아이를 살리실 것을 믿고 있었지만 인간이 해야할 책임과 역할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너무 좋은 사람중에 가끔 이런 문제에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은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운명만 믿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입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하나님을 개입시켜 가장 어렵고 불안한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인도하심을 믿고 행동하지만 우리는 가만히 누워서 좋은 결과를 저절로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으면서 우리는 매 순간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앞서 가서 일하십니다.

갈대 상자도 만들고 역청도 칠하고 미리암을 보내고 바로의 공주도 만나고 자신을 유모로 소개하는 요게벳의 행동이 하나님이 앞서서 일하심을 믿고 걸어가며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들입니다.

 

 기     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데 있어 생명을 내걸 수 있는 믿음을 허락 하시고 

이 일을 해 나감에 있어 우리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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