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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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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9. 7. 00:00

<출애굽기 18:13~27> 이드로의 조언을 받음

 

 성경말씀 : 출애굽기 18:13~27

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15  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16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17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18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19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20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21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2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23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26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27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 

 

 말씀묵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난 뒤 이드로는 이스라엘 진중에서 모세가 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하는 일을 지켜본 결과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하루종일 앉아 있고 백성들 또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모세 혼자서 재판장과 선지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까지 다 담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드로는 이 일을 좋게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대조가 되는 것은 이드로가 18장 1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는 기뻐했지만, 여기에서는 '모세가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는 '좋지 못하다'고 평가한 점입니다.

여기에서 "선하지 못하다"는 뜻은 도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 아니라 원어로 보면 "좋지 않다“라는 뜻으로 모세의 하는 일이 비능률적이며, 효율성이 전혀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드로가 이에 대하여 조언을 주는데, 3중 구조로 방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는 계속적으로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서 백성들의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어야 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에게 근본적인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 그들에게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백성들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판단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구체적인 행정 조직을 구성하여 업무를 효과적으로 분담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좌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세워 역할을 분담시키되, 여기에서는 그들의 자격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을 충고하면서 이드로는 자신의 조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그렇게 하도록 명하시면"이라는 단서를 조언 전후에 두 번씩 강조하여 붙임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또한 자신의 충고에 대한 합리성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의 조언대로 모세는 그대로 실천했으며, 후에 신명기에서도 모세는 이 조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그의 설교를 통하여 다시 한번 기록하고 있습니다.(신 1:9~18)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비록 이방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가장 모범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모세의 삶에 있어서 어려울 때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출 2장), 또한 큰 일을 치른 후에 가족들을 데려옴으로 위로와 평안함을 안겨 주었으며, 모세의 행정 능력의 부족함을 지적하여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하는 데에 중요한 조직력을 부여해 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인물로 등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 모세가 어떻게 해서 이드로보다도 조직 경영 능력이 부족하여 충고를 받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럽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던 모세에게 그런 정도의 지혜를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지혜를 계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꼭 계시해 주어서가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는 자로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의 지혜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성경은 스스럼 없이 밝힙니다.


구약성경의 저자는 거기에 대한 긴장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를 이룩한 지도자라고 하여 그에게 그 외의 모든 필요한 능력들이 다 함께 자동적으로 부여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조직 경영 능력이 미숙했고,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에도 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곳에 경험이 많은 장인 이드로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는 아니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구속사와 관계없이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부여해 주신 지혜와 경험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나, 믿는 집단의 공동체 안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공동체가 너무나 많은 훌륭한 구원의 역사를 일구어 낸 믿는 집단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자신들을 개발시켜 나갈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능력들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와 인간들의 경험들 속에 내재시켜 주신 지혜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잠재적으로 부어 주신 모든 자원들을 개발해 내고, 거기에서 배우려는 태도를 기르며, 또한 그러한 지혜와 자원들을 십분 활용하는 자세를 길러야 함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계시라는 한 방법만이 아닌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마치 기독교인들만이 세상 문제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물론 영적인 구원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그렇지만), 착각과 편협적인 성과 속 구분의 제한된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리더는 세상 사람들의 경험 세계와 창조 속에 숨어 있는 지혜를 늘 배우는 자세를 길러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 참된 리더십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대리자 위치에 있었지만 보잘 것 없는 이방인의 조언을 받아들입니다.

유교 문화권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절대적 위치에 있는 자가 아랫 사람의 충고를 듣는다는 것이 권위의 훼손이며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타당성이 있다면 누가 말해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진정한 권위요 리더쉽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함과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또한 기독교인들 서로에게서 비판을 받는 요소들 중의 하나를 보면 의외로 포용력과 남의 조언을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그러한 면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의 역사에서 유난히 파당과 분열이 심한 것도 그러한 원인이 이유들 중의 하나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신앙의 순수성을 고수하려는 열정이라든가, 세속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충절들이 뭉쳐져 그러한 결과를 낳은 원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면 '합리적인 것'을 세속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비(非)영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유난히 편협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구속사의 문제가 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 주는 것처럼 어떤 영역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지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면서 우리는 그러한 영역들을 구분해 가는 분별력을 길러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또한 지극히 영적일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영역과 사고를 늘려 가지 않으면 기독교가 비합리적인 종교로 전락해 버리는 비성경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합리적인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함을 기름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분별력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     도 

나보다 못한 이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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