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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5. 00:00

<출애굽기 1:15~22> 산파를 통한 이스라엘 말살정책

 

 성경말씀 : 출애굽기 1:15~22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말씀묵상

사단이 성도를 공격할 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여러 단계를 동원합니다.


애굽의 바로가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된 정책도 세 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정책이 중한 노역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첫 계략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


이제 새 왕조의 바로는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기 위한 두 번째  계략으로서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를 부릅니다. 

그들로 하여금 히브리 여인들의 출산을 도울때 남자 아이면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산파로 하여금 그 일을 시킨 것은 죽이는 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남자 아기를 받으면서 죽이고는 마치 출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죽은 것처럼 꾸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략은 그 산파들이 히브리인이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민족이 자신들의 아이를 죽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니까 말이죠.

이 정책은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기에 히브리인들에게 원망을 듣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을 말살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의 산파들은 바로의 명을 어겼습니다. 바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바로의 명을 어긴 것은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 민족이었기에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이 곧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산파들의 신앙으로 바로의 계락은 또 다시 실패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번성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로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특히 사단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교회를 공격하는 가장 고도의 계략중의 하나가 교회 안의 신자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바로가 히브리 산파를 이용했듯이 사단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으로 서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히브리 산파가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는데 없어서는 아니 되는 역할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부흥을 위해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인해 히브리 여인들은 출산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으며 죽을 뻔한 아이도 이들로 인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 가는 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분을 가진 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얼마나 교회가 세상의 비웃음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일에 방해를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흥왕하는데 산파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훼파시키려는 사단의 계략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교회 안에 히브리 산파와 같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지만 그 삶과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문제는 어디서에서부터 출발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진데서부터 옵니다.

요즘, 신앙인들은 하나님 두려운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 존전의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제멋대로 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보다  권력을 더 두려워하고 명예를 빼앗길까 더 두려워 합니다.

돈을 더 두려워하며, 학점을 더 두려워하고 직장의 상사를 더 두려워 합니다.


세상이 왜 우리를 우습게 보고 두려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굴복하고 세상을 두려워 하면 절대로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치 아니하고 하나님 존전의식 없이 살아가면서 맡은 교회의 직분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많은 사역들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자리에 서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에 히브리 산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통해 히브리 민족의 많은 사내아이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산파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파가 된 자들이여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     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진정 경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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