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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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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22. 00:00

<창세기 5:12~24> 종말의식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성경말씀 : 창세기 5:12~24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말씀묵상 

창세기 5장의 족보는 경건한 셋의 후손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4장을 통해 셋과 에노스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된 것이죠.

에노스때 시작된 공적인 예배가 그 아들 게난때에 이르러 사랑들 사이에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게난의 이름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게난이란 이름에는 ‘둥지를 틀다’ ‘광대한 소유’ 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시대에 이르러 에배를 통한 신앙부흥 운동이 둥지를 틀고 정비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광대한 소유’ 의 뜻에는 부흥의 불길이 점점 확산되고 넓어져 잃어버렸던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시대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게난을 생각하며 우리 또한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광대한 소유’ 로 만들어 나가야 할것입니다.

 

셋의 후손들의 예배생활은 분명 가인후손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정황을 보건대 화려햇던 가인의 후손과는 달리 셋의 후손들은 영육간에 있어서 무척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은혜체험은 하나님께로의 찬양으로 귀결이 됩니다.

게난이 자녀의 이름을 ‘찬양하다’ 란 뜻의 ‘마할랄렐’ 이라고 지었던 것은 바로 이런 시대적인 상황과 관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의 정황은 즐거워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예배를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통해 누리는 감격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케 했으며 그것이 자녀의 이름에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넘치고 있는지, 고난중에도 기뻐하며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야렛’ 은 ‘데리고 내려오다’ ‘운반해 오다’ 뜻입니다.

이는 야렛의 시대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운동이 소수의 무리만이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들 주변으로 전댤되고 또 그 후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전달된 흔적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아들의 이름을 ‘봉헌’이란 뜻의 에녹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그의 신앙이 매우 철저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에녹은 이런 아버지의 신앙의 영향 아래에서 경건하게 자라 났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부모들의 살아 있는 신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에녹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져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간 사람입니다.

족보가운데 계속하여 등장하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고 영생함으로 경건한 삶의 궁극이 어떤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 하였더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 것이 아니라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엔 ‘그가 죽을때 심판이 온다’ 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선 므두셀라를 주시면서 심판의 경고를 에녹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종말의식이 에녹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녹은 당시 팽배했던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유다서 14-15절이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삶의 바탕에는 이런 종말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역사를 돌아보아도 하나님과 동행한 경건한 성도들은 하나같이 종말의식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개인적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종말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철저한 종말의식을 마치 세상을 운둔하며 살아가는 이원론적 사고의 산물인양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원론이란 그럴듯한 포장지로 숨기는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종말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은둔의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삶에 가장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에녹을 보십시요 현실의 삶에서 이 세상을 향하여 심판의 경고를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 눈은 하늘을  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종말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     도 

종말의식이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삶을 지배케 하시고

그 사실을 세상에 날마다 선포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실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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