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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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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20. 00:00

<창세기 44:14~34 (2)> 장자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삶

 

 

 성경말씀 : 창세기 44:14~34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말씀묵상

 

형제들을 다시 불러들인 요셉은 형들에게 은잔이 자신의 점치는 도구라고 말하였습니다.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과연 점을 잘 쳤을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의 관행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을뿐입니다.

요셉이 점을 잘 치는 사람이 아니라 애굽의 총리대신이 점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애굽의 종교, 문화적인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애굽의 바로 왕은 정치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종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즉 태양신의 아들로 애굽을 다스리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애굽의 총리대신 역시 그런 위치에 근접해 있는 자로서 점을 잘 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었습니다.

그점에서 요셉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애굽의 총리는 점 잘 치는 존재라고 인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즉 요셉이 실제 점을 쳤던 것이 아니라 애굽의 총리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을 그의 형제들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을 잘 치는 입장에서 이미 형제들의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냄으로 형제들로 하여금 어떤 변명이나 핑계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형제들이 오직 진실만을 말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 남아서 종이되고 나머지 사람은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 유다가 대답을 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유다는 요셉을 종으로 팔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자기가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유다가 요셉을 팔자고 했을 때 요셉을 잃는 것으로 말미암아 마음 아파 할 아버지의 심정에 대한 이해심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요셉을 편애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 자기들에게도 돌아와야 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버린 요셉에 대한 증오심만이 타오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다는 아우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그 경우 자기는 영영토록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아버지는 음부로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베냐민을 대신해서 자기가 종살이를 하겠다고 자원합니다.

 

그의 말속에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대신 희생을 감당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베냐민을 지칭할때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가 베냐민을 지극히 연약한 자로 여기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유다는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지고 요셉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간청하고 있는 유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전의 그에게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놀랍게 변화된 모습을 유다가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이렇게 변화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며느리 다말의 헌신을 통해서였습니다.

수치와 목숨을 각오한 다말의 희생으로 유다의 가문이 살아날 수 있었고 다말의 사건을 통해 유다는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당한 고난의 여정을 이제 유다가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족보, 약전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사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공동체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가 그것을 보여 주었고 이제 유다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겪을 십자가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야곱 가문의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요셉은 야곱 가문의 영적인 장자의 명분을 받았다면 유다는 야곱 가문의 혈통적인 장자 명분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가는 자들입니다.

언약 안에 들어온 장자들에게 따라야 하는 것이 희생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온 장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희생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삶입니다.

내가 죽고 썩어져야 내 가족이 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기     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장자로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주를 따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4: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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