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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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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17. 00:00

<창세기 43:15~34 (2)> 영적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

 

 

 

 성경말씀 : 창세기 43:15~34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31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말씀묵상

 

요셉은 베냐민을 데리고 온 그의 형들을 자신의 집으로 청하여 잔치를 벌이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곡식자루 안에 있던 돈 사건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들은 요셉의 청지기에게 그 일을 고백함으로  마음의 두려움을 제하고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잔치가 되려면 형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난 뒤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잔치를 베푼 것은 그만큼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발설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신을 밝히지 못하는 요셉이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왔겠습니까?

또한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잔치에 참여한 요셉의 형들도 얼떨결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기쁨의 시간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계속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영광과 축복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테스트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의 형들이 가지고 있었던 행동과 마음의 상태로는 이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공동체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형들은 변화가 보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를 미리 알려주게 되면 그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 싶은 감정을 절제하며 겨우 참고 있습니다.

 

어쨌든 두려움에 떨던 요셉의 형제들은 어느새 긴장이 풀어지고 즐겁게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그들이 총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들에게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잔치의 기쁨은 진짜 잔치의 맛보기 같은 것입니다.

요셉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누릴 즐거움과 기쁨을 잠깐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을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기 전이라도 그들에게 이렇게 잔치를 베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형제들과 어서 하나가 되어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요셉의 마음이 잔치를 베풀게 한 것입니다.

 

지금 요셉의 형제들은 총리가 요셉인줄 모르는 상태에서 고초를 겪기도 하고 또 잔치에도 참여합니다.

요셉이 총리인줄 모른다는 것은 자신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일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잔치도 큰 기쁨을 만끽하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가운데 주님께서 이렇게 베일에 가려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경우 그들의 영적 상태가 요셉이 자신을 드러내면 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자기를 계시하실 때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내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수준에 따라 은혜의 깊이가 다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만큼 우리는 주님을 알 수가 있고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은 언약공동체 안에 속해는 있지만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가 없고 그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조금만 계시하시거나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기왕에 예수 믿는데 하나님의 계시가 풍성함 가운데 살아야 신앙생활의 묘미와 기쁨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성막제도에서도 성막뜰만 밟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성막의 가장 깊이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온전히 계시함을 보는 신앙생활이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심에 대해 별 깨달음 없이 신앙생활 합니다.

우리의 영적상태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자신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형들에게 잔치를 배설햇듯이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서 배설하시는 잔치를 누릴 수 없는 영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삶가운데서 베푸시는 잔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하고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잔치 같은 즐거운 환경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시고 우리와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기뻐하며 누릴 잔치를 주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잔치의 기쁨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잔치가 주어졌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가운데서도 잔치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당신의 삶을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가 무르익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서 빨리 당신과 온전한 하나가 되어 주님이 누리는 모든 영광을 나누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삶을 살면서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려는 태도가 우리 몸에 배어버렸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한 죄악들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궂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강조하는 것을 청승맞게 생각하는 경향까지 생겨났습니다.

 

주님께서 내 죄를 모두 담당 하셨으니 적당히 죄를 지어도 상관없고 나는 그저 즐기고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구원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잘못된 사상들이 이상하게 교회 내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려 고난을 겪게 하신 것은 형들을 진정으로 회개케 하여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장성한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진정한 회개를 가져다 줍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 가운데서 기쁨의 잔치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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