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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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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17. 00:00

<창세기 4:1~7 ②> 최선의 수비는 최대의 공격

 

 성경말씀 : 창세기 4:1~7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멘)

 

 말씀묵상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살펴볼 예배의 또 다른 관점이 있는데 그것은 공예배시 지녀야 할 합당한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혹자는 아벨은 첫 새끼로 제사를 드린데 반해 가인의 제사엔 첫번째 곡식이란 표현이 없는 것을 들어 가인의 제사엔 정성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이 새끼를 자주 생산하는 것에 비해 농산물은 첫 곡식은 수확 때가 아니면 거두어 들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첫’이란 단어가 이 본문에서 제사의 열납여부를 결정짓는 요소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 때문에 아벨에게 분노의 감정을 나타낸 가인의 태도를 보면 가인도 분명 아벨 못지 않게 정성을 들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 생각 됩니다.

대부분의 분노는 자신이 생각한 당연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되는 수 많은 구약성도들의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비록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받지 못했으나 멀리서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기다리는 믿음으로 그 증거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아담도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아내의 이름을 산 자의 어미란 뜻의 하와라고 명명합니다.

‘산자의 어미’의 뜻 속에는 생명 있는 자가 하와를 통해 오실 것이란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아담도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보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그 사실을 증거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지녔던 아담과 하와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얘기를 들으면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그 믿음이 있었고 가인에게는 그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령과 함께 메시아를 고대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는데 반해 가인의 제사엔 그 마음이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심령은 부요하기 그지없었고 인간의 종교적 충족감을 채우기 위한 제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종교성으로 드리는 제사는 인간중심적입니다.

오직 자기도취와 자아 만족만이 있을 뿐입니다.

거기엔 본질적인 심령의 변화가 없습니다.

자기만족이 안되면 더 큰 죄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 가인의 제사입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고 나서 자기 만족이 안되니 분노하고 살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 집중하기보다는 사람의 종교적 정서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인간중심의 예배가 점점 확장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거기엔 십자가의 은혜를 갈구하는 절박한 심정이 자리 잡지 못합니다.

예배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분의 영광을 대할 때 우리는 그 비추인 빛 앞에서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구속의 은총을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라고 우리는 한껏 감정이 고조되어 찬양을 부르지만, 주의 영광을 보고 드러난 자신의 추한 모습 때문에 "화로다. 화로다." 라고 고백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마다 축제같은 예배를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못하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보다 종교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위험성은 그 예배를 통해 누리는 자기 만족 때문에 회개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예배 드리러 나갈 때 자신의 모습을 정직히 바라보고 오실 메시아를 통해 주실 은혜를 간절히 소망햇던 아벨과 같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십자가의 은혜를 갈망하는 믿음의 예배가 될 때 우리의 예배는 열납 될 것입니다.

 

이제 분노하고 있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상황에서 선한 일인 올바른 제사를 다시 드리기 위해 가인은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열납 받은 원인을 동생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어떻게 해야 나의 제사도 열납 받으실까?"를 고민하고 다시 올바른 제사를 드렸더라면 자연히 분노의 감정도 사라지고 살인도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포츠에서 최선의 수비는 최대의 공격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죄를 피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 적극적인 자세로 선을 행할 때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힘쓰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기      도 

우리가 주일마다 열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갈망하며 

하나님의 임재가운데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게 해주시고

이를 통해 우는 사자같이 달려드는 사단의 모든 세력들을 물리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장 8~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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