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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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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19. 00:00

<창세기 4:16~24> 화려함 가운데 갇힌 불쌍한 인생

 

 성경말씀 : 창세기 4:16~24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아멘)

 

 말씀묵상 

 

하나님께서는 아담 하와에게 아벨대신 셋을 주셔서 경건한 후손 즉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계보를 이어가게 하십니다.

이제 창세기는 가인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악의 세력과 셋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대결 구도를 그려가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악의 세력이 활개를 치며 흥왕해도 결국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함으로 우리에게 힘과 소망을 심어줍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시작으로 가인과 그 후손들의 관한 내용입니다.

16~17절을 보면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에덴동편 놋땅에 기거하며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주면서까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지만 가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가인의 방랑은 끝이 났을 것이며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 영원한 운명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인은 회개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보호받는 은혜의 울타리를 떠났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스스로의 성을 쌓았습니다.

가인은 원래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제사하는 행위나 하나님과 나눈 그의 대화 내용을 고찰하면 그는 은혜를 체험했고 예배의 기쁨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존전을 떠나니 어느 것도 만족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가 더 처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으로 타락한 자는 그 악함이 불신자보다도 더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보게 됩니다.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그것을 대신 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죄악에 탐닉하게 되고 또 허무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히6:4-6)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은 6대 라멕에 이르러 악이 절정에 다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라멕은 아예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몰랐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던 사람입니다.

아내를 두 명을 취하므로 인류 최초로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그의 악행에는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라멕과 그의 후손은 더욱 번창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라멕과 그의 후손은 인류문화사의 측면에서 보면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라멕은 많은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면에서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화려하며 일명 세상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하는 집안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라멕은 가인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여 가인을 죽이는자는 칠배이나 자신을 해하는 자는 벌이 칠십 칠배라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조롷합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신에게 아무 벌은 없고 형통하기만 하니 죄 짓는 일이 더 즐거워지고 죄 짓는 일에 더 용감해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때로 은혜의 울타리를 넘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고 오히려 삶이 더 평안해진다면 우리도 라멕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이며 회개의 동기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바로 형벌이라고 말입니다.

내벼려 두신다는 것은 회개의 마음을 허락치 않는 것이요.

그들이 이땅에서 쌓은 악행만큼 심판날에 주어질 형벌을 더 쌓아 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화려한 라멕의 삶이 부러워집니까?

오히려 불쌍하고 안타까우며 한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명해집니다.

오늘날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 라멕의 인생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영적 안목을 지닐 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우리가 세상학문을 통해 배워 온 인류문화사를 구분짓는 구석기, 신석기...의 연대가 성경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가 처음부터 지혜와 지식이 풍부하여 문명을 이루고 살았음을 증언합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문화는 노아홍수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창조과학회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우리는 보이는 세상의 화려함을 동경하며 부러워하며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희에게 영적인 안목을 주사 그 화려함 속에서 라멕의 인생을 보게 하시고

오히려 안타까와 하며 저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허락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장 25~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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