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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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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3. 18. 00:00

<창세기 39:19~2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성경말씀 : 창세기 39:19~23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말씀묵상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댓가는 차디찬 감옥생활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갇힌 감옥은 일반감옥이 아닌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그곳은 왕에게 반역을 꾀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일반옥에 비해 고통이 훨씬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당한 요셉의 고통의 정도를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105: 17-19)

 

여기서  ‘쇠사슬에 매였으니’ 로 번역된 구절의 원문상의 뜻은 ‘영혼이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뚫리다’ 입니다.

그의 발이 차꼬를 참으로써 시작한 감옥생활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성경이 이렇게 표현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창세기 기자는 요셉의 이러한 삶을 아무렇지 않게 형통함이라고 표현합니다. (23절)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 왔을때부터 계속하여 성경은 요셉을 형통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요셉의 인생 결과를 알고 있기에 이해가 되지만 당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요셉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 고통의 목적지를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저를 연단한다고 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요셉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연단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받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셉은 지금 야곱의 언약을 성취하는 자로 서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의 언약을 보면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이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창27-29)

이 구절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삶으로 성취해 가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그가 만인의 섬김을 받고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주가 되기까지 연단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요셉에게 주어진 고난의 세월은 애굽의 총리 생활을 향한 준비과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에게서 성취될 계시입니다.

예수님이 만민의 왕으로, 열국의 지도자로 서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수난이 필연적이었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겪을 수난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요셉의 수난은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도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남은 고난이란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부족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수난이 예수님의 지체들인 성도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재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남기신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당할 고난을 모두  당하셨으니 우리는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다고 늘 들어 왔습니다.

맞습니다.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받을 고난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께서 대신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이 고난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닌 구원의 완성을 위한 고난입니다.  

요셉의  꿈을 통해 보여 주신 성도의 궁극적인 영광의 자리에까지 온전하게 이르게 하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이 고난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 크게 다가옵니다. 

지금 요셉의 생애가 보여 주는 것이 이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 고난의 삶이 점철되었듯 우리도 요셉의 꿈을 통해 보여준 성도가 받을 영광의 자리까지 이르는데에 수 많은 고난의 흔적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낙담과 좌절이 됩니다.

경건하고 의롭게 살려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나아가 신앙 자체에 회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죄의 유혹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데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고난을 의아하게 생각치 마십시요 물론 이게 말 같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생각하며 비록 고통이 있다고 해도 감사함으로 그 기간을 지나갈 수 있도록 늘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에 채워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저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기     도 

 

 

 

 

경건하게 살수록 당하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사함으로 우리 몸에 채우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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