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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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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13. 00:13

<창세기 3:7~13> 죄악의 첫 양상으로 나타난 책임전가

 

 성경말씀 : 창세기 3:7~13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멘)

 

 말씀묵상 

 

오늘 주어진 본문에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그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가 나옵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교제를 단절시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가운데 세상이 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로서 누려야 할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하여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 막는 죄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요.

여기서 죄란것은 윤리 도덕 차원을 말함이 아닙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 불순종이 있다면 이 모두 죄입니다.

 

 

이제 범죄로 타락한 인류에게 구체적인 죄의 양상이 나타나는데 그 첫째되는 것이 책임전가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잘못을 묻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서로 죄의 책임을 전가 시킵니다.

아담의 책임전가는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서 그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로서 지극히 옹졸하고 이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자진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했습니다.

책임을 전가함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해서입니다.

또한 잘못을 인정함으로 인해 발생할 꾸중과 질책이 싫어서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 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인간적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적 자존심이 높을수록 칭찬과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는 강렬해지고 다른 이로부터 간섭받고 멸시받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됩니다.

그 자존감의 극치를 보여준 일이 인간의 타락 사건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모든 이로부터 존경과 우러럼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적 자존심이 결국은 선악과를 따먹는데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흔히 모든 죄의 근원을 교만이라고만 표현하지만 우리말의 ‘교만’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거만’의 의미와 가깝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만’이란 단어는 ‘자존감’이란 표현과 교호적으로 사용될때 성경에 계시된 타락의 본질적 의미를 충분히 살려 내리라 봅니다. 

사실 죄의 양상 가운데는 윤리적으로 볼 때 죄질이 더 무거운 것들도 많이 있는데 타락 이후 인간 사이에 나타난 죄의 첫 양상이 책임전가인 것은 책임전가 근저에 도사린 인간의 자존감이 다른 모든 죄의 양상에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적인 자존심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육학과 심리학은 그 자존감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며 그것을 더 키워 가도록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점점 더 질시당하며 간섭받는 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조차도 정당한 권징과 책망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직 인간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칭찬만 있을 뿐입니다.

현대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인간의 자존심을 내 세우며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인간적 자존심의 정체와 그것의 죄성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유행하는 내적치유세미나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진단과 해결책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러한 접근법에도 일반 은총 차원의 순기능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종류의 세미나가 각광을 받는 것은 이 시대가 그 만큼 십자가 복음의 능력과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상실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분명 죄의 기원은 인간이 자존심을 내세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반대로 구원은 인간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무너지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공의로우심을 생각하며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너무도 추악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뼈저리게 느낄 때 인간의 자존심은 산산히 부수어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때 주님이 주시는 자존감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자존감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 상처를 받지만 십자가로 인한 자존감은 그것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감사하며 즐거이 감내해 내는 것입니다.

인간적 자존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주님으로 인한 자존감은 자신이 전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존감이 철저히 무너지고 십자가로 인한 자존감이 그 마음에 세워질때 인간 보편적 죄악의 양상인 책임전가라는 굴레에서 진정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통해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 잘못을 지적 받을 때 기분상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 들입니까?

2. “난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또는 “다른건 참을 수 있어도 내 자존심 건드리건 용서못해!”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란 사실이 인식 됩니까?

3. 인간적인 자존감과 주님으로 인한 자존감이 구분 되십니까? 

    이 둘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요?

4. 책임전가와 자존감의 상관관계를 더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     도 

삶가운데 나를 향한 책망과 질시 그리고 잘못을 지적 받을때에

그것들을 감사하며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나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상처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곳에서 십자가를 바라 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장 14~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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