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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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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19. 00:00

<창세기 35:8> 드보라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 하신 것

 

 성경말씀 : 창세기 35:8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말씀묵상

 

이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벧엘에 올라가서 단을 쌓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 다음 이야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위해  정성들여 준비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든지 아니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시는 모습이 그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성경은 야곱 가정의 영적부흥의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드보라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드보라는 계속하여 등장했던 인물도 아니고 오늘 본문에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 인물입니다.

 

성경에 의미 없이 기록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을 기록하게 하신 데에는 분명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8절은 젼혀 생뚱맞은 내용의 이야기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건이었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의 죽음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곱이 벧엘로 올라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가나안 족속들의 보복 공격이 두려워 자신들의 생명이 위태한 상황이 되자 절박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올 때 하나님께서 주변 부족들에게 두려움을 주사 야곱 가족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야곱 일행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한 숨을 돌리고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일행의 움직임은 한 부족을 이룰 정도의 대규모 집단의 이동이었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갈때  벧엘에서 하룻밤을 묶었던 것과는 달리 야곱 일행은 벧엘에 도착해서는 장막을 치고 그들의 짐과 짐승 떼들을 풀어 놓으며 그곳에서 일정 간을 기거하면서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단을 쌓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유목민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 정황이었기에 드보라가 죽음과 장사 지내는 사건이 벧엘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정 기간을 기거하면서 벧엘로 올라 올때의 하나님께 대한 그 절박하고 갈급한 심령이 많이 느슨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만 해결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는 야곱을 줄 곧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던 상황이 종료되고 문제가 해결되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도 넘쳐났지만 그 마음이 야곱의 인간적 본성으로 인해 영적인 느슨함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통한 부흥을 맛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갈급한 심령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과 교회 역사가 말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바로 드보라의 죽음은 느슨해진 야곱의 심령에 갈급함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드보라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 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곳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 의미가 통곡의 상수리나무란 뜻입니다.

이것은 드보라의 죽음을 대하는 야곱의 심정을 나타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을때 리브가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는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야곱이 세겜에 기거할때 이삭의 집에서 온 것 같습니다.

리브가가  죽고 없는 상황에서 드보라는 야곱에게 어머니와 같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얼떨결에 리브가를 떠나 삼촌집으로 갔지만 그것이 리브가와는 마지막이었습니다.

때문에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를 대할때마다 그는 어머니를 뵙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드보라가 죽었으니 야곱의 상심과 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 절망스런 상황이 다시 한번 야곱을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심령이 되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또한 드보라의 죽음은 평생 못 잊고 그리워하던 모친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이어 주던 마지막 고리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가난한 심령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박하고 갈급한 심령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고 그 마음에 샬롬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성함이 과연 진정한 복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경제적인 풍요가 있다고 해서 우리를 절망케 하는 인생의 제반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우리가 처해진 삶의 환경이 과연 하나님을 향해  갈급해 하도록 가난한 심령이 되게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풍요롭고 아무 문제가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늘 하나님만을 애타게 바라며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게 되는 것인데...

사실 인간의  본성상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드보라의 죽음과 같이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그럴 바에야 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를 궂이 받을 필요없이 그저 적당한 은혜만을 받으면서 살아가겠다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야곱이 진정한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깊은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하나님께서 풍요롭고 평탄한 삶을 허락하실때 가난한 심령이 되도록 우리의 일상의 삶이 영적 분투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할때 우리의 삶 가운데도 드보라의 죽음과 같은 사건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     도 

 

 

 

 

평탄한 삶 가운데서도 가난한 심령이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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