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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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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16. 00:00

<출애굽기 3:11~12> 내가 누구관대

 

 성경말씀 : 출애굽기 3:11~12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말씀묵상

모세는 하나님이 맡기시는 소명에 대해 ‘내가 누구관대’로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동양적 겸양의 미덕에서 나온 대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존감이 낮은 열등감의 표현도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자존감 낮고 열등감이 컸던 모세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 구절을 설명하는 것은 이 구절의 전후 문맥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본문에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답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였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학교에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이 표현은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간 삶을 통해 깨닫게 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모세는 광야의 40년 세월을 통해 애굽에서 40년간 높아진 인간적 자존감이 다 부숴지고 자신이 연약한 질그릇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대답속에는 자신이 한때 애굽의 왕자였다는 사실이 그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졌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은 천직이 양치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예를들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생 경험의 차원으로 수개월간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결코 참담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 비천한 자리가 오히려 자신의 스펙을 쌓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먹고 살게 그것밖에 없어서 평생을 잡부로 일하는 사람에게 그 위치는 자신을 참담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가장 비참하다고 여겨질때 본성이 다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본성이 제대로 나와야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고자 하는 것은 그래야만 인간의 자존감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진정으로 겸손한 자가 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의 얼마동안은 양을 몰고 있을망정 자신의 존재를 양치기로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양치기를 자신의 생업이요 천직으로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 스스로를 참담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만 모세의 마음에 남아있는 인간적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누구관대’라고 대답은 그렇게 인간적 자존감이 철저히 무너진 모세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더 많은 능력이 있을때 자신을 부르시지 왜 지금  아무 능력도 자신도 없어진 이때에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부르셨을까?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렇게 되었기에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자신이 깨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그 준비를 자꾸 외형적인 측면으로 많이 생각합니다.

“주여 저를 위대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에는 사실 우리의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런 식의 기도로 하나님이 사람을 쓰신 경우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시면 감사함으로 묵묵히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위대하고 초라한 것을 구분 짓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가 그래도 괜찮은 존재이지 라고 생각한다면 아직까지 자신이 덜 깨진 것입니다.

겸양의 미덕으로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질그릇 같은 존재로 여겨져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가 사회적으로 높은 곳에 있다고 하여 실제로 그런 맘이 들지 않는다면 모세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양치기로 여기는 지경에 이르게 하셨듯이 우리도 때때로 실제적인 비천한 자리에 하나님께서 내려 놓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때 인간의 내면속에 깊이 박힌 자기자랑의 뿌리가 좀처럼 뽑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역의 결과를 놓고 은근히 자랑하거나 또는 위축되는 것은 모두 내가 그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역결과를 놓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 은근히 자화자찬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누구관대’라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일을 다 해놓고도 자랑이 생기지 않습니다.


계시록에서 보여 주듯이 훗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실때 우리는 그것을 벗어서 주님께 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기     도 

우리의 존재가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덧입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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