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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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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18. 00:01

<창세기 12:2~3> 그림자 복과 원형의 복

 

 성경말씀 : 창세기 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말씀묵상 

하나님께서는 하란을 떠날 것을 명령 내리신 후 아브라함에게 3가지의 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땅의 복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너를 위해 준비한 땅이 있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예비 된 땅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땅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막상 그가 가난안 땅에 들어가서는 유랑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의 말년에 그가 소유한 가나안 땅은 자신과 가족의 무덤인 막벨라 굴 하나였습니다.

또한 그의 후손 이스라엘도 가나안 땅에 잠시 있었을 뿐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패망당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졌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그 땅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원래 약속하신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땅은 그 가나안이 아니라 다른 땅임을 주지 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는, 자손의 복입니다.

이 ‘자손의 복’은 믿음의 자손을 말합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4;22-23)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을 따라 낳았다고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 육신을 따라 난 자녀일 뿐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이삭을 따라 난 자들입니다.

믿음의 자녀를 말합니다.

따라서 자손의 축복은 영적인 후손이 이 땅에 번성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함을 받게 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는, ‘복의 근거를 삼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시는 예수님이 축복과 저주의 근거요 갈림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땅을 준비해 놓으시고, 아브라함을 그 땅의 주인을 삼으며,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그 땅이 점차 확장되어 마침내 온 천하가 하나님의 땅으로 바뀌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고 마침내 온 천하를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곧 인류를 구원하려는 ‘구원의 약속’ 입니다.

그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이루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큰 민족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도 믿음의 자녀가 받을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땅이 언급될 때에는 항상 하나님 나라와 연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대상4:10) 라는 아베스의 기도에서의 복도 우리가 생각하듯이 사업의 지경이 넓어지고, 아파트의 평수가 넓어지고 공부의 지경이 넓어지며  활동범위의 지경이 넓어져 국제적인 인사가 되는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지경(땅의 경계)을 넓힌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야베스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왕성함을 염원하는 기도이지 눈에 보이는 땅의 복을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과 민족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 영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믿는 자 안에서 맺어지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땅의 풍성함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모두가 하나님나라에서 누리는 복의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복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입니다.

따라서 그 복의 원형을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팔복입니다.

이 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추구하는 복과는 역설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영적인 복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복은 통로가 되는 복입니다.

근원이 되는 복입니다.

내 자신이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복은 분명히 아브라함이 받았는데...그 복을 누리는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그 자손들이요, 땅의 모든 민족들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로서 살다가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죽으러’오신 분입니다.

그 분은 절대로 불행하시지 않았지만 그분의 삶의 목표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예수님의 단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그 십자가가 지금의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 십자가가 천하 만민을 죽음에서 천국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시고 천국은 우리가 갑니다.

 

세상의 복은 소유의 복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소유의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놓는 그런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세상의 복은 자기를 위해 쌓아놓는 복, 남은 어떻든지 자기만 소유하는 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먹이는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은 나누어주는 복,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가 추구해야할복은 바로 영적인 복이요 통로가 되는 복입니다.

 

 기     도 

복의 모델과 원형을 구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시사 그림자 복을 붙잡고 살지 말게 해주시고

복의 원형인 하늘의 복을 추구하며 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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