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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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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1. 13. 00:00

<창세기 21:1~7> 비웃음에서 기쁨의 웃음으로

 

 성경말씀 : 창세기 21:1~7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말씀묵상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손을 약속하실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처음에 기가 막혀서 웃었습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 나온 웃음이다. 쓴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의 웃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본 후에 나온 온전한 웃음이요, 기쁨과 환희의 웃음이었습니다.

사라는 도저히 성취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으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만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웃음을 웃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의 이름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에서 나오는 불가능의 비웃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승리의 웃음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이 이 두 가지입니다.

성경은 먼저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두 간격을 메꾸기 위해 오셧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그것을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우리에게 덮이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쓴웃음을 승리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셧습니다.

 

이삭으로 인하여 사라는 비웃음에서 기쁨의 웃음을 웃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났고 예수님도 성령으로 잉태되고 탄생하셨습니다. (갈 4;29)

사라의 경우는 경수가 끊긴 상태였고 마리아의 경우도 사내를 가까이 하지 않은 가임 불가능의 상태로 모두 인간의 방법으로 임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라와 예수님 모두 출생이 미리 예고되었고, 이름이 미리 주어졌습니다.

 

성도를 향한 성경의 모든 약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쓴 웃음을 짓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은 뜬 구름 잡는 것만 같습니다. 

현실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것 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 약속들이 반드시 실현된다는 확증입니다.

우리에게 승리와 환희의 웃음을 안겨줄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웃음은 강한 확산력을 지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감격과 기쁨의 웃음이 여러분만의 웃음이 아니라 그 웃음을 듣는 모든 사람의 웃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통하여 가는 곳곳마다 슬픔이 웃음으로 변하고, 질병이 치유로 변하고, 분쟁과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이 있게 되고, 불신앙이 있는 곳에 믿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기     도 

 

우리의 삶에서 쓴 웃음들이 승리의 웃음으로 바뀌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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