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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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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28. 00:05

<창세기 16:1~3> 실용주의의 위험성

 

 성경말씀 : 창세기 16:1~3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말씀묵상

하나님께서 횃불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과 사래에게 아직 약속받은 후손의 씨가 없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지쳤습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식과 믿음은 갖고 있었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래의 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한 통로로서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첩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손의 약속을 하실때 ‘네 몸에서 날 자’ 라고만 하셨지, 사래의 몸을 통한 자식만이 약속의 씨라고 꼬집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의 문화와 관습이 정실부인을 통해 자녀를 갖지 못할 때에는 첩을 통해 얻는 자녀도 정실부인의 자녀와 동등하게 인정되어 그 집안의 정식 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아브람과 사래는 누구를 통해 얻든지 아브람의 씨라면 그것이 약속한 후손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신 사래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포기하고 인간의 생각인 하갈을 통한 약속의 성취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까지 사래의 몸을 통한 후사를 기다린 것을 보면 아브람과 사래는 분명히 사래의 몸을 통해 후손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니까 지쳐서 영적 분별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속히 이루기 위해 인간의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실용주의입니다.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만 속히 이루면 된다는 것입니다.

 

기다리기 싫어하고 빠른 결과물을 얻으려는 인간의 속성상 실용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실용주의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볼 수 있으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는 목적 못지않게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더 많은 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정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거쳐야 합니다.

목적이 성경적이면 방법이나 수단도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오던중 수레가 흔들려 떨어지려는 법궤를 붙잡은 웃사를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죽인 내용이 나옵니다.

분명 웃사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궤를 존귀히 여기는 마음때문에 그리햇습니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법궤는 수레에 실어 이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법궤를 만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웃사는 그 방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실용주의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영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목표가 정해지면 그 일을 이루는 수단과 과정은 두드러지게 죄가 되지 않는 이상 왠만한 것은 눈감고 다 이용하려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에 부합하는가를 따져 보려 하지 않습니다.

하갈을 통해 후손을 얻는 것이 그 당시 문화적인 배경으로 볼때 전혀 잘못이 아니었기에 아브람과 사래가 그 방법을 선택했듯이 말이죠

 

사래가 선택한 인간의 방법이 당장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켜 주는 듯 보였으나 자신이 선택한 그 하갈로 인하여 사래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하갈은 내가 주님의 뜻을 나의 방법대로 이루려고 할때마다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육욕의 몸종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그 하갈을 당신의 침소에 들이라는 사래의 속삭임이 들려 옵니다.

그 사래의 속삭임에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고 있습니까?

 

 

 기     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정당화 시키지 않도록

우리의 영적 판단력을 예리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6: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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