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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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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12. 00:00

<창세기 34:30~31> 세겜에서의 총체적 결말

 

 성경말씀 : 창세기 34:30~31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말씀묵상

 

야곱의 아들들에 의한 대학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디나의 강간 사건과 연이어지는 야곱 아들들의 의한 세겜성 주민들의 학살 사건은 야곱으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며 세겜에서의 삶을 뒤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입에서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자는 얘기가 나올 법 한데 여전히 야곱에게서 그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겜성의 학살을 소문 들은 주변의 다른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하여 자신을 공격할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 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요.

야곱은 지금 하나님 앞에 서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죄는 회개하지 않고 또한 자식들의 못된 행동을 꾸짖지도 아니하고 자신의 손해와 자신의 위험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들 때문에 나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는 하지 못했다고 해도 죄없이 도매금으로 학살을 당한 세겜성의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안위 문제였으니 야곱이 얼마나 자아 중심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30절에서 야곱이 말하는 가운데 ‘나‘ 라는 단어가 7번 나옵니다.

모세가 이 글을 기록할 때 ’나‘라는 단어를 두 세번만 사용해도 가능한 문장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단어가 7번 들어가도록 모세에게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7이란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즉 야곱에게는 지금 ‘내’ 가 ‘자아중심성’ 이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세겜서의 10여년의 세월은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게 야곱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아 온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내리막 길에 서게 되면 영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34장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세겜성에서 안주하며 그저 그렇게 일상에 매몰된 채 살아온 야곱 가정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제와 같은 의식 속에서 생활하고 있고 금년에 처한 공동체의 형편은 작년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교회로 모이고 조직들은 움직이며 종교적인 행사를 통해 사람들은  위안을 얻으며 만족해 합니다.

주일이면 정해진 시간에 따라 사람들은 기대감 없이 모이고 아무 일 없이 또 흩어집니다.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마치 기록되지 않은 창세기 33장과 34장 사이의 야곱의 가정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매주 모이고 흩어져도 성경과 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하시던 시대의 교회의 모습과 생명력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총체적인 어려움 아래 있는 시대 속에서 기독교와 복음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래 명령하신 벧엘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같은 가나안 땅이요 벧엘 근처에 있으니 여기도 괜찮다고 하면서 세겜에 머물러 있는 신앙이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기     도 

 

 

 

 

 우리의 신앙이 세겜의 삶이 아닌지 돌아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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