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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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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10. 00:00

<창세기 34:5~12 ②> 영적 강간은 세상과의 동화를 불러옵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34:5~12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말씀묵상

 

디나를 강간한 세겜과 그의 아비 하몰이 야곱을 찾아와 세겜과 디나의 혼인을 간청합니다.

 

사실 윤리적으로만 본다면 세겜과 그의 아비 하몰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디나를 건드렸으니 자신들이 디나의 일생을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터줏대감이요 그 족속의 우두머리입니다.

디나를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중히 요청을 하러 왔고 나중에는 할례를 받으라는 야곱의 아들들의 요구 조건까지 다 들어 주었을 정도로 신사적이요 인격적인 사람들입니다.

이 사건들이 구속의 진리를 계시하는 성경이 아닌 삶의 지혜와 교훈을 담은 기록이었다면 통혼을 함으로써 적들이 서로 화친하고 윈윈(win win)하는 감동적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윤리적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보여주는 그림들입니다. 

디나의 사건을 통하여 강간을 했으니 나쁜 놈들이고 책임진다고 하니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과 우리와 세상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제 저들의 얘기를 들어 보십시요 양 가문간에 통혼을 하면 서로에게 유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가나안 백성 세겜사람들 사이에 서로 통혼하자고 제의합니다.

그리고 세겜땅에서 이스라엘의 기업을 얻으라고 제의합니다.

그리고 디나와 결혼만 허락한다면 어떤 요구 조건도 다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자칫하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가나안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거룩하고 다른 백성과 구별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장자 백성이 만일에 가나안 사람과 서로 통혼하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이 엄청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통간 한 사이인데 아예 혼인을 맺음으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자는 것입니다.

강간을 당한 디나가 처녀로 남아 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겁탈을 한 남자와 결혼을 하면 그 일이 수치스러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부대금으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양가가 서로 왕래하며 한 족속이 되어 태평성대를 누리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단에게 한번 유린을 당하면 세상은 그것을 계기로 아예 자신들과 동화시켜 한 통속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아예 세상과 혼인을 해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위치와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어 세상의 기업을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세상을 구경하는 것쯤이야 하면서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보러 나가면 반드시 세상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신자로서의 영광스러운 모습대신 천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이 우리에게 남겨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세상은 아예 우리를 아내로 삼고 같은 집에서 살자고 달려 들고 조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하고 우리를 완전히 세상의 가치와 의식속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얻을 기업이라고 속삭입니다.

지금 세겜과 하몰이 야곱을 유혹하는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들과 타협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너 좋고, 나 좋자’라는 식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서 ‘왜 그렇게 별나게 사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어도 예수 믿는 사람은 별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유혹은 물질만능의 유혹입니다. 

혼인만 이루어지면 요구하는 재물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논리요 세상의 가치입니다.

 

우리가 세상에게 유린당하는 빌미는 대부분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경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그냥 놓아두면 신자일지라도 죄악을 좇아가는 성향이 강하기에 가치중립적인 것은 대부분 죄악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인 것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를 좇아가게 될 수가 있습니다.

티비나 영화와 같은 문화생활이나 여가생활은 대부분 가치중립적인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와 의식에 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현재 세상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나는 세상의 가치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게 강간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젖어든 세상의 가치와 의식이 급기야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잃게 만들고 나중엔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신앙은 신앙이고 삶은 현실이지” 하면서 세상의 가치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사단은 우리를 세상과 결혼 시키는데까지 몰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 사람들과 야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타협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안에서 살지만 세상을 거부하고, 사탄을 거부해야합니다.

세속적인 문화에 야합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6장 2절을 보면 노아 홍수 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것이 노아홍수가 난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결국 선택받은 자들도 세상의 물이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은 하늘을 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기     도 

 

 

 

 

우리의 가치와 의식이 세상과 동화되기를 원하는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4: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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